기획자, PM, PO로서의 터닝 포인트
2022.05.29 - [커리어와 진로] - 스스로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의심해보기
먼저 등장인물을 소개하자면 조이는 나의 팀장이자 20년 넘게 IT업계에서 고군분투하신 기획자 이시다. (단순히 기획만 하신 게 아니라 사업, 전략 등 다양한 직무를 맡아하신 경험이 있으시다.) 조이와 나는 최근 15번 이상의 1:1 미팅을 하였다. 이유는 서로가 생각하는 방향이 달라서 혹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달라서였다.
사실 내 커리어를 살펴보면 좋게 말하면 다양하고 나쁘게 말하면 번잡하다. 마케팅, 프로젝트 매니저, 사업기획, 프로덕트 오너 등을 맡아 10년 정도 굴렀고 그런 과정에서 몇 차례 성공도 맛보았다. 하지만, 이 성공이 독이 되었다. 어찌 보면 나는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이고 감에 철저하게 의존하는 편이다. 그리고 내 감을 확신으로 만들기 위한 확증편향적 정보 취득 과정을 거쳐 일을 해왔다.
이러다 보니 자기중심적 커뮤니케이션과 협업에 대해 자연스럽게 등한시하게 된 것 같다. 소위 말해서 나는 쪽대본을 빠르게 치는 일을 주로 했었다.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일을 하기 급급하였고 그것으로 인해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인정 욕구 중심의 업무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은 늘 빨랐고, 늘 잘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될 것만 했으니까.
조이의 말처럼 간사하고, 편하게 일한 것이다. 그냥 개인적으로는 되는 일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안 되는 일에 힘을 쓰는 것 자체를 힘들어했다. 그래서 이번에 조이와 나는 수차례의 미팅을 통해 이 부분을 훈련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조이에게 배운 것은 진득함과 실패를 감안한 도전이다. 치열하게 사용자에 대해 고민하고 정리해서 그 근거를 만드는 작업. 그리고 화면을 설계할 때도 힉스니 휴리스틱이니 하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내가 생각하고 그 근거를 단단하게 만들어 나아가는 일을 배웠다.
10년 차가 이걸 이제 배웠다고 하는 것, 그리고 이걸 이렇게 공개적인 곳에 적는 것은 어찌 보면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게 오히려 아는 척하고 그렇게 '보이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기획자이자 PM, PO로서 내가 해왔던 일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주말 동안 가졌다.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스스로 고민이 부족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 개인 포트폴리오나 어디 자기소개서에서 늘 말하는 무언가를 되게 만든다.라는 가치는 내가 늘 가지고 있었지만 '좋은' 기획자/PM/PO 인가에 대해선 고민이 부족했다. 그냥 스스로 그런가 보지 하고 넘어간 적이 많다.
문서화를 꼼꼼히 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자주 하고, 일정을 맞추고, 다양한 부분에 관심이 많은 것들은 2019년 NDC 때 내가 PM이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이라고 말했었다. 사실 지금 다시 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나는 저런 소양을 가지고 있는가?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으니 아예 안 가지고 있진 않을 것이다.
[NDC 19] 개발PM이 하는 일이요? 당신의 계획을 현실로 만드는 일입니다.
게임개발PM, 그 "전지적 참견시점"에 대하여
www.thisisgame.com
하지만, 지난 커리어나 만들어 온 것들을 보면 나는 찍먹 전문가에 가까웠다. 많은 경험과 다양한 사례를 접하고 실제로 해본 것은 맞지만 Drill Down을 정말 극한까지 해본 것은 드물다. 누군가의 말처럼 30분을 주고 무언가를 만들어주세요 하면 그 시간 내에 가지고 올 수 있는 최고의 결과를 가지고 오지만, 실제로 10시간을 주고 무언가를 만들어 달라 그러면 실제로 30분 당시의 밀도로 10시간을 채우진 못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인간이 참 간사하게도 자신이 잘하는 일만 하고 싶고 그러다 보니 30분짜리 일을 계속 쉬지 않고 했고 그러다 보니 스스로 바쁨에 취해버렸다. 이렇게 되니 바쁜 게 좋은 거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자신이 얼마나 그것에 대해 깊게 그리고 명확하게 알고 있는지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냥 그것을 행하고 인정받는데만 급급한 것이다.
조이와 기획에 대해서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느낀 것은 이런 것이다. 의사, 간호사, 변호사의 직업윤리가 있듯이 IT기획자/PM/PO 들도 직업 윤리가 있어야 하고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선 그것이 고난의 비탈길이던, 절망의 계곡이던 떨어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2020.11.02 -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 그래서 PO(Product Owner)가 뭔데요?
2년 전에 쓴 글 중에 PO란 무엇인가에 대해 쓴 글이 있다. 그 글은 지금 읽어도 틀린 것이 없다. 하지만 내가 행하는 방식이 틀렸다. 교과서적인 말이니 당연히 안 틀렸겠지 요즘 토스의 이승건 대표가 다양한 PO강의를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있다. 몇몇 부분들은 겹치는 것도 있고 이미 알고 있는 것도 있고, 새로운 접근법인 것도 많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저걸 안다고 해서 실제로 그것이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이와 이야기하면서 사실 나는 내 10년 커리어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어떻게 앞으로 10년을 그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이 글을 조이와의 깊은 대화 그리고 진정으로 나의 미래를 생각해주는 리더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작성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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